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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야기

DNA, 40억 년을 이어온 생명의 설계도: 진화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나?

by steady info runner 2025.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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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지구에는 눈부시게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습니다.
저 깊은 바닷속 빛 한 줄기 없는 곳의 미생물부터,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독수리,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자신까지.
문득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 모든 생명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이토록 놀랍도록 다른 모습들을 갖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이 거대한 질문의 답을 품고 있는, 우리 몸 모든 세포 속의 경이로운 '설계도', DNA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그리고 이 DNA가 어떻게 '진화'라는 장대한 드라마를 40억 년간 이끌어왔는지, 그 비밀을 함께 파헤쳐 보겠습니다.



다윈이 남긴 위대한 퍼즐

'진화'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19세기 위대한 생물학자, 찰스 다윈을 떠올립니다.
그는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자연 선택설'이라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죠.
간단히 말해,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특징을 가진 개체가 살아남아 자손을 남기고, 그렇지 못한 개체는 도태된다는 것입니다.
갈라파고스 섬의 핀치새들이 저마다 다른 모양의 부리를 갖게 된 것도, 각 섬의 먹이 환경에 가장 적합한 부리를 가진 새들이 살아남아 그 특징을 물려주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윈조차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 두 가지 거대한 '블랙박스'가 있었습니다.
다양성의 원천: 대체 그 '다양한 부리 모양'은 애초에 왜 생겨나는 걸까?
유전의 법칙: 부모의 '유리한 특징'은 어떻게 자손에게 전달되는 걸까?
다윈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답은 그의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20세기에 이르러서야 'DNA'라는 분자의 발견으로 풀리기 시작합니다.

생명의 언어, DNA를 발견하다

다윈이 세상을 떠난 후, 과학자들은 생명의 비밀을 풀기 위해 세포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그리고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같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생명의 모든 정보가 'DNA'라는 이중나선 구조에 암호처럼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DNA는 A, T, C, G라는 네 가지 염기(알파벳)로 쓰인 거대한 '생명의 레시피'입니다.
이 '레시피'가 바로 다윈이 찾던 유전의 법칙 그 자체였습니다.
부모는 이 DNA 레시피를 복사해 자손에게 물려줍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부모님을 닮는 것이죠.
다윈이 막연하게 생각했던 '유전'의 실체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변화의 시작: 창조적인 '오타'

그렇다면 다윈의 첫 번째 질문, '다양성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그 답은 '실수'에 있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며 이 거대한 DNA 레시피를 복제합니다. 이 복제 과정은 경이로울 정도로 정확하지만, 100%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수십억 개의 알파벳을 옮겨 적다 보면 가끔 '오타'가 생기기 마련이죠.
이 DNA 복제 과정의 '오타'를 우리는 '돌연변이(Mutation)'라고 부릅니다.
돌연변이는 자외선이나 특정 화학 물질, 혹은 단순한 복제 실수로 인해 발생합니다.
"어? 오타가 생기면 큰일 나는 거 아닌가요?"
물론입니다.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거나, 세포에 해를 끼쳐 질병(암이 대표적이죠)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주아주 드물게, 이 '오타'가 생명체에게 아주 약간 다른 특성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이 '아주 약간 다른 특성'이, 특정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할 때,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말한 다양성의 원천입니다.

'오타'가 '걸작'이 되는 순간: 자연 선택

이제 다윈의 두 퍼즐 조각이 모두 맞춰졌습니다.
DNA 돌연변이가 무작위로 다양한 특성을 만들어내고 (다양성의 원천)
환경(자연 선택)이 그중 가장 유리한 특성을 골라냅니다. (적자생존)
이 과정을 보여주는 아주 유명한 예가 있습니다. 바로 '후추나방' 이야기입니다.
19세기 영국, 산업혁명 이전에는 나무껍질이 밝은색이었습니다.
이때는 밝은색 후추나방(DNA 코드 A)이 눈에 띄지 않아 새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잘 살았죠.
가끔 돌연변이로 어두운색 나방(DNA 코드 B)이 태어났지만, 이들은 밝은 나무에서 너무 눈에 띄어 금방 새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공장 매연이 나무를 검게 뒤덮자, 상황은 180도 뒤바뀌었습니다.
이제는 검은 나무껍질에서 밝은색 나방(A)이 눈에 띄어 잡아먹히고, 어두운색 나방(B)이 완벽하게 위장할 수 있게 되었죠.
결국, 어두운색 나방(B)만이 살아남아 자신들의 '어두운색 DNA'를 자손에게 물려주었고, 불과 수십 년 만에 영국의 나방 대부분은 어두운색으로 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화입니다.
DNA의 '우연한 오타(B)'가 '환경의 변화(매연)'를 만나 '필연적인 생존'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진화는 박물관 화석에만 있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서, 심지어 우리 몸 안에서도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항생제 내성균: 우리가 항생제를 남용할수록, 우연한 돌연변이로 항생제에 저항력을 갖게 된 박테리아(슈퍼 박테리아)만이 살아남아 진화합니다.
독감 바이러스: 매년 독감 예방 주사를 새로 맞아야 하는 이유도, 독감 바이러스의 DNA(정확히는 RNA)가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우리의 면역체계를 회피하도록 진화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진화: 성인이 되어서도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유당 분해 효소) 역시, 수천 년 전 목축을 시작한 인류 집단에서 발생한 DNA 돌연변이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선택적으로 퍼져나간 진화의 결과입니다.

40억 년을 이어온 우리 안의 역사

오늘 우리는 DNA라는 작은 분자가 어떻게 생명의 다양성을 꽃피우고, '진화'라는 거대한 역사를 써 내려왔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다윈이 상상했던 '변이'는 DNA 돌연변이라는 무작위적 '창조'였고,
그가 말한 '유전'은 DNA 복제라는 정교한 '전달'이었습니다.
모든 생명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설계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40억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DNA의 '오타'와 환경의 '선택'이 빚어낸,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걸작'에 가깝습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이 지구의 모든 생명은, 그 40억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우리 몸속 DNA에 담긴 이 경이로운 이야기가, 생명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시선에 작은 울림을 더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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