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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화

11월4일, 한글 점자의 날 훈맹정음에 대해

by steady info runner 2025.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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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이 한글날이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1월 4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한글 점자의 날'입니다.


시각장애인에게 '글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11월 4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위대한 한글, '훈맹정음'의 탄생과 그 속에 담긴 숭고한 정신을 깊이 있게 조명해 봅니다.






목차

  1. 훈맹정음, 암흑 속 한 줄기 빛이 되다
  2. 단 6개의 점, 한글의 원리를 담다
  3. 점자, 우리 일상 속 어디까지 와있나?
  4. 미래의 점자: 음성 기술과의 공존
  5. 마치며: 모두를 위한 문자, 공존의 상징





1. 훈맹정음, 암흑 속 한 줄기 빛이 되다


'훈맹정음(訓盲正音)'. '눈먼 이를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이 이름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의 공식 명칭입니다. 이는 1926년, 송암 박두성 선생에 의해 창안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제강점기 시각장애인의 삶은 더욱 막막했습니다. 당시 맹학교가 있었지만, 교육은 일본어로 진행되었고 점자 역시 일본어 점자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우리말이 있어도 우리글로 배우지 못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당시 제생원 맹아부(현 서울맹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박두성 선생은 이 안타까운 현실을 바꾸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동료 교사, 제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한글 점자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7년간의 끊임없는 연구와 수많은 실패 끝에, 마침내 한글의 창제 원리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6점식 한글 점자, '훈맹정음'이 탄생하게 됩니다.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이 공식 반포된 이 날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제2의 한글날과도 같은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2. 단 6개의 점, 한글의 원리를 담다


훈맹정음은 세로 3줄, 가로 2줄, 총 6개의 점을 조합하여 글자를 만듭니다. 이 6개의 점이 '점자'의 기본 단위입니다.


박두성 선생은 한글 창제 원리인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점자에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초성, 중성, 종성을 구분하여 각 자음과 모음에 고유한 점형을 부여했습니다.


  • 초성(자음): 기본이 되는 자음(ㄱ, ㄴ, ㄷ, ㄹ, ㅁ, ㅂ...)을 만들고, 'ㅋ', 'ㅌ', 'ㅍ' 등 거센소리는 기본 자음에 특정 점을 더하는 방식으로 규칙성을 부여했습니다.
  • 중성(모음): '아', '야', '어', '여' 등 기본 모음을 좌우 대칭, 상하 대칭을 활용해 체계적으로 만들었습니다.
  • 종성(받침): 초성과 동일한 점형을 사용하되, 위치를 한 칸 아래로 내려 표기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이처럼 훈맹정음은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하며, 점의 수를 최소화하여 효율성까지 갖춘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과학적인 점자 체계입니다.




3. 점자, 우리 일상 속 어디까지 와있나?


훈맹정음 반포 이후 약 100년이 흐른 지금, 점자는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공공시설입니다. 엘리베이터 버튼, 지하철역 스크린도어, 계단 손잡이, 공중화장실 표지판 등에서 우리는 점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법적, 제도적 노력으로 점자 표기가 더욱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 의약품: '약사법' 개정으로 의약품의 주표시면에 점자 표기가 의무화되었습니다. 이는 시각장애인이 약물을 오용할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여줍니다.
  • 화장품: '화장품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화장품 용기에도 제품 유형 등을 점자로 표기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식음료: 아직 의무는 아니지만, 일부 음료 캔 상단이나 컵라면 용기 등에서 점자 표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ESG) 경영과 맞물려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여권'이 발급되는 등, 점자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시각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4. 미래의 점자: 음성 기술과의 공존


"요즘 스마트폰 음성지원(Voice Over) 기능이 워낙 잘 되어 있는데, 굳이 점자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자가 위기에 처했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음성 기술이 정보를 빠르고 편리하게 전달해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듣는 것'과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글을 읽으며 철자법을 익히고 문해력을 키우듯,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는 문해력의 근간입니다. 점자를 통해 스스로 글을 '읽고' '쓰는' 과정을 거쳐야만 어휘력, 문장 구성력, 논리적 사고력을 온전히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음성 기술은 공공장소에서 사적인 정보를 보호하기 어렵고, 수학 공식이나 프로그래밍 코드처럼 복잡한 기호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미래의 정보 접근성은 음성 기술과 점자가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상호 공존'의 형태로 나아가야 합니다. 점자는 결코 사라질 문자가 아니며,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 맞춰 점자 정보 단말기 등 새로운 기술과 융합하며 진화하고 있습니다.




5. 마치며: 모두를 위한 문자, 공존의 상징


점자는 단순히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특수 문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그 6개의 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문화적 상징'이자 '배려의 언어'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점자를 발견했을 때, 약 상자에서 오돌토돌한 점을 만졌을 때,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훈맹정음'의 의미와 박두성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한 번쯤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점자에 대한 우리의 작은 관심이 모여 시각장애인에게는 더 편리한 삶을, 우리 사회 전체에는 더 따뜻한 공존의 세상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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