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핫한 동네'를 꼽으라면 단연 성수동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팝업 스토어의 이면에는 치솟다 못해 감당 불가능해진 임대료, 정체성을 잃어가는 거리, 그리고 인파에 뒤엉킨 안전 문제까지 심각한 위기감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트렌드의 중심이 된 성수동. 그 폭발적인 인기의 진짜 이유와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어두운 그림자, 그리고 지속 가능성을 위한 대안까지 꼼꼼히 짚어봅니다.
목차
- 성수동은 어떻게 '팝업의 성지'가 되었나?
- SNS와 기업이 만든 '디지털 벽돌 공장'
- "위태로운 핫플"…안전과 공존의 위기
- 임대료 폭등과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그림자
- 유행을 넘어, 지속가능한 성수동을 위한 조건
1. 성수동은 어떻게 '팝업의 성지'가 되었나?
성수동이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 물리적 조건: 과거 공장 지대였던 덕분에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고, 트럭 진입이 쉬운 직선 도로가 많습니다. 이는 대형 팝업 스토어를 설치하고 철거하는 데 최적의 환경입니다.
- 지리적 이점: 강남이라는 거대 소비 배후지가 있으며, 2호선, 7호선, 수인분당선 등 교통이 매우 편리합니다.
- 공간의 특성: 공장이 쓰던 '미디움 사이즈'의 널찍한 필지와 높은 천고는 뉴욕의 소호(SoHo)처럼 전시, 카페, 상업 공간 등 어떤 용도로도 바꾸기 좋은 독특한 매력을 제공했습니다.
- 정책적 지원: 성동구에서 '붉은 벽돌' 건물 보존을 지원하고 대형 프랜차이즈 입점을 제한하는 등,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도시 재생 노력이 초기 힙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 SNS와 기업이 만든 '디지털 벽돌 공장'
성수동 열풍의 핵심에는 '팝업 스토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현대 소비 트렌드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과거 기업들은 TV 광고에 막대한 돈을 썼지만, 이제 젊은 세대(MG)는 TV를 보지 않습니다. 대신 스마트폰과 SNS(인스타그램)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기업들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습니다. 성수동의 넓은 공간에 거액을 들여 화려한 팝업 스토어(세트장)를 만듭니다. 방문객들은 이 '세트장'에서 무료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인증샷을 찍어 자발적으로 자신의 SNS에 올립니다.
이 사진들은 SNS 공간을 꾸미는 '디지털 벽돌'이 되어 바이럴 마케팅을 일으킵니다. 기업은 TV 광고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타겟 고객에게 정확하게 브랜드를 홍보하고, 방문객은 돈 들이지 않고 트렌디한 경험을 즐깁니다. 성수동은 이 두 니즈가 만나는 거대한 '디지털 벽돌 공장'이 된 셈입니다.

"위태로운 핫플"…안전과 공존의 위기
하지만 폭발적인 인기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안전'입니다.
성수동의 핵심 상권인 연무장길 등은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이면도로'가 대부분입니다. 주말이면 수많은 인파와 거주민 차량, 택시 등이 말 그대로 뒤엉켜 아슬아슬한 상황이 반복됩니다.
사람 머리 바로 옆으로 차량 사이드미러가 스쳐 지나가고, 경적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일부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해도, 모든 통행을 막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위험한 동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골목 곳곳의 무분별한 흡연과 쓰레기 문제는 상주하는 주민과 상인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4. 임대료 폭등과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그림자
"팝업 빼면 시체"라는 비판은 성수동의 또 다른 위기를 보여줍니다.
브랜드들이 단기 팝업을 위해 일주일에 1억 원이 넘는 임대료를 지불하는 사례가 생기면서, 건물주들은 더 이상 장기 임대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보장하는 연 5% 임대료 인상 제한(장기 임대 적용)을 완전히 무력화시켰습니다.
결국, 감당 불가능한 임대료를 피해 동네 슈퍼, 백반집, 세탁소 등 기존 주민들의 생활 가게와 성수동의 개성을 만들었던 소상공인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성수동은 이제 '대기업의 광고 전시장'이 되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5. 유행을 넘어, 지속가능한 성수동을 위한 조건
성수동의 유행은 영원할까요?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다음 세대의 기기가 등장하거나, 넷플릭스가 극장을 대체했듯 새로운 기술이 팝업 스토어의 역할을 대신하면, 이 거대한 상권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결국 성수동이 반짝 유행을 넘어 지속가능한 동네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 '사람이 사는' 동네: 이벤트성 방문객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이 실제로 거주할 수 있도록 청년 임대 주택, 장기 전세 등 다양한 주거 정책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 '일자리가 있는' 동네: 크래프톤 같은 IT 기업들이 입주했듯, 단순 소비가 아닌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일자리가 유입되어야 상권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정체성을 지키는' 동네: 붉은 벽돌 같은 물리적 상징을 넘어, 성공한 팝업이 장기 매장으로 정착하도록 유도하고, 단기 임대의 사각지대를 보완할 새로운 정책이 필요합니다.
성수동은 지금, '이벤트'가 아닌 '사람 중심'의 진짜 도시가 될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수많은 '핫플'처럼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 될 것인지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