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사자처럼 찢고, 독수리처럼 덮쳤다."
성경 요나서의 니네베(니느웨), 열왕기하의 산헤립 침공. 성경 독자에게 아시리아(앗수르)는 잔인한 약탈자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잔인해서' 세계를 정복할 수는 없습니다.
아시리아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제국(Empire)'이라는 시스템을 완성한 국가입니다. 그들은 철저한 군사 행정 혁신과 계산된 공포를 통해 고대 근동을 통일했습니다.
오늘은 아시리아가 어떻게 단순한 도시 국가에서 세계 최강의 군사 대국이 되었는지, 그 구조적 비밀을 역사적 사료와 함께 파헤칩니다.
목차
1. 군사 혁명: 징집병에서 상비군으로
초기 고대 근동의 전쟁은 농한기에 농부들을 소집해 싸우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아시리아는 이 판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Tiglath-Pileser III, 재위 BC 745–727)의 군사 개혁이 있습니다.
1.1. 최초의 직업 군인 (Kisir Sharruti)
아시리아는 왕에게 직접 충성하는 대규모 상비군(Standing Army)을 운용했습니다.
- 전문성: 1년 365일 전쟁만 훈련하는 집단입니다. 농사지으러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 병종의 분화: 보병, 기병, 전차병, 공병(Siege Engineers)으로 세분화되었습니다.
1.2. 철기 무기와 공성 병기
아시리아 군대의 상징은 '철(Iron)'과 '공성전'입니다.
- 철제 무기: 청동기보다 월등한 강도의 철제 검과 창을 대량 생산해 보급했습니다.
- 공성탑과 충차: 성벽을 부수는 충차(Battering Ram)를 체계적으로 운용했습니다. 이는 라키스(Lachish) 전투 부조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메모: 당시 다른 국가들이 성을 포위하고 굶어 죽기를 기다릴 때, 아시리아는 공병대를 투입해 성벽을 직접 무너뜨리고 진입했습니다. 이는 현대전의 기갑 부대와 유사한 충격 효과를 주었습니다.
2. 공포의 정치학: 선전과 심리전
아시리아의 잔혹함은 단순한 가학성이 아닙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이었습니다.
2.1. "싸우지 않고 이긴다"
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시각적으로 전시했습니다.
- 살가죽 벗기기 및 꼬챙이 처형: 반란을 일으킨 도시의 지도자들을 잔혹하게 처형하고 그 과정을 부조(Relief)로 남겨 사신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 목적: 공포를 심어주어 주변 도시들이 싸우기도 전에 항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도시가 아시리아 군대가 온다는 소문만으로 성문을 열었습니다.
2.2. 기록된 잔혹성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연대기)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II)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도시 문 앞에 거대한 기둥을 세우고, 반란을 주동한 자들의 살가죽을 벗겨 그 기둥을 덮었다... 그들의 시체를 기둥 주변에 쌓았다." (출처: Annals of Ashurnasirpal II)
이러한 기록은 왕의 위엄을 과시하고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한 정치적 선전물이었습니다.
3. 제국의 혈관: 강제 이주와 행정망
정복보다 어려운 것이 통치입니다. 아시리아는 피정복민의 반란 의지를 꺾기 위해 '대량 강제 이주 정책(Mass Deportation)'을 사용했습니다.
3.1. 민족 정체성 말살
- 정복한 지역의 엘리트(기술자, 귀족, 군인)를 제국의 반대편 끝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 고향과 기반을 잃은 이들은 반란을 꾀할 수 없었고, 생존을 위해 아시리아 제국 시스템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 이는 단순한 추방이 아니라, 제국 전역에 노동력과 군사력을 재배치하는 경제적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3.2. 도로망과 역참 제도
방대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왕의 대로(King’s Highway)'를 정비하고, 일정한 거리마다 말을 갈아타는 역참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니네베의 명령이 제국 끝까지 1주일 안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훗날 페르시아 제국이 그대로 계승합니다.
4. 성경 속 아시리아: 역사적 교차점
이러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텍스트가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4.1. 북이스라엘의 멸망 (BC 722)
- 사건: 아시리아의 살만에세르 5세와 사르곤 2세가 사마리아를 함락시킵니다.
- 배경: 호세아 왕의 반란 시도에 대한 응징이었습니다.
- 결과: 앞서 언급한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사마리아인은 메대 지역 등으로 끌려갔고, 이방 민족이 사마리아에 정착하며 혼혈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열왕기하 17장).
4.2. 히스기야와 산헤립 (BC 701)
- 사건: 산헤립(Sennacherib)이 유다를 침공하여 46개 성읍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합니다.
- 유물: '산헤립의 프리즘(Taylor Prism)'에는 히스기야를 "새장에 갇힌 새"처럼 가두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차이점: 성경은 천사의 개입으로 아시리아 군이 물러갔다고 기록(왕하 19:35)하지만, 아시리아 연대기는 히스기야가 막대한 조공을 바치고 항복한 것으로 기록합니다. (학계에서는 전염병 혹은 본국 반란으로 인한 철수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5. 요약 및 인사이트
아시리아가 세계 최강이 된 이유는 단순히 잔인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상비군 제도: 농민병이 아닌 직업 군인으로 전쟁의 프로가 되었습니다.
- 기술 우위: 철기 무기와 공성 병기로 전술적 우위를 점했습니다.
- 공포와 행정: 잔혹한 선전으로 저항을 무력화하고, 강제 이주로 반란의 싹을 잘랐습니다.
하지만 '공포에 기반한 통치'는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피지배 민족들의 증오가 임계점을 넘었을 때, 바빌로니아와 메대의 연합군에 의해 아시리아는 순식간에 붕괴합니다(BC 612, 니네베 함락).
다음 글 예고: 아시리아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신흥 강자, '바빌로니아 제국과 느부갓네살의 황금기'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참고문헌
- Healy, M. (1991). The Ancient Assyrians. Osprey Publishing.
- Pritchard, J. B. (Ed.). (1969).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ANET). Princeton University Press.
- Oppenheim, A. L. (1977). Ancient Mesopotamia: Portrait of a Dead Civiliza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Taylor Prism (The British Museum, Inv. 9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