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약서에 서명하려는데 공인중개사가 빠르게 조항을 넘기고, 낯선 법률 용어들 앞에서 그냥 도장을 찍었던 경험,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특히 요즘은 서울 전역과 경기 상급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으로 묶이면서, 거래신고와 확정일자 부여까지 자동 연계되는 국토교통부 전자계약시스템 이용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요. 중개사분들도 토허제 구역에서는 전자계약을 적극 활용하는 추세고요.
전자계약서도 결국 같은 계약 내용을 담고 있으니, 민법 조문과 공식 자료를 중심으로 기본 조항 9개와 자주 쓰이는 특약의 의미를 차분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부동산의 표시 — 내가 사는 아파트의 정체
계약서 첫 페이지에는 매매 대상 아파트의 기본 정보가 적혀 있어요. 단순히 주소만 있는 게 아니라 토지와 건물 두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 처음 보면 낯설 수 있어서 하나씩 짚어볼게요.
지목은 토지의 종류를 구분하는 표시예요. 아파트 부지는 대부분 "대(垈)"로 표시되는데, 주거·사무·상업 등 영구적 건축물을 올릴 수 있는 땅이라는 뜻이에요.
대지권은 조금 더 중요한 개념이에요. 아파트는 같은 땅 위에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구조예요(이를 집합건물, 각 세대가 나눠 갖는 소유 구조를 구분소유라고 해요). 그 땅을 세대별 지분으로 나눠 사용하게 되는데, 대지권 칸에 바로 그 지분 비율이 적혀 있어요.
건물 파트에는 구조(철근콘크리트구조, 철골콘크리트구조 등 건물의 뼈대 소재), 용도(건축법상 아파트는 주택으로 쓰는 층수가 5개 층 이상이어야 해요), 그리고 실제 매매 대상인 세대 면적이 표시돼요.
제1조 목적 — 돈은 이렇게 주고받아요
제1조는 매매대금을 어떻게 나눠 지급할 것인지를 정하는 조항이에요. 항목별로 살펴볼게요.
- 계약금 — 계약 당일 바로 지급하는 돈으로, 해약금 기능도 겸해요 (제5조에서 자세히 설명할게요)
- 융자금 — 매도인이 기존에 대출받으면서 저당권을 설정해뒀을 때, 매수인이 그 빚을 대신 갚기로 하고 매매가에서 차감하는 금액이에요
- 임대보증금 — 세입자가 있는 채로 거래할 경우 매수인이 임대인 지위를 그대로 이어받게 되므로, 보증금 액수를 미리 명시해둬요
- 중도금 · 잔금 — 나머지 금액을 언제, 얼마씩 나눠 낼지 날짜와 함께 기재해요
제2조 소유권 이전 — 잔금과 서류는 동시에
제2조는 잔금 지급과 등기 서류 교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이에요. 민법 제536조의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계약서에 명확히 반영한 거예요.
동시이행 관계란 쉽게 말해 "당신이 먼저 이행하기 전까지 나도 안 해도 돼요"라는 방패예요. 잔금날 매도인이 서류를 안 가져오면 매수인도 돈을 안 줄 수 있고,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내가 먼저 의무를 이행해서 상대방의 항변권을 깨트린 뒤 이행지체 책임을 묻는 방법도 있어요. 실무에서는 잔금날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 입금 확인 후 서류와 열쇠를 교환하는 게 일반적이고, 인도일은 보통 잔금 지급일과 같은 날로 정해요.
제3조 제한물권 소멸 — 깨끗한 집을 받을 권리
매도인은 잔금일까지 아파트에 걸린 법적 부담을 모두 없애고 넘겨줘야 해요.
- 저당권(근저당권) — 대출 담보로 잡힌 상태로, 갚지 않으면 경매로 넘어갈 수 있어서 잔금 전 반드시 말소돼야 해요
- 임차권 등기 — 세입자가 보증금을 못 돌려받고 나가면서 남겨둔 흔적이에요. 강제집행 위험이 있으니 말소 필수예요
- 제세공과 · 관리비 미납 — 밀린 세금이나 관리비가 있다면 매도인이 잔금 전에 정리해야 해요
다만 당사자 합의 하에 일부 부담을 매수인이 인수하기로 한 경우에는 (보통 그만큼 가격을 낮추게 되고요) 예외로 두는데, 그 내용은 특약이나 제1조 융자금 칸에 명시해야 해요.
제4조 지방세 등 — 인도일 기준으로 나눠요
아파트 관련 수익과 비용은 인도일을 기준으로 나눠요. 인도일 전날까지는 매도인 몫, 인도일부터는 매수인 몫이에요.
거주 목적으로 매수하신다면 수익 귀속보다는 관리비 정산이 주 관심사일 텐데요. 잔금 전 미납 관리비가 있다면 매도인이 정산하는 게 원칙이에요.
취득세, 양도소득세 등 지방세법에 규정된 세목을 별도로 언급한 이유는, 계약 당사자간 합의만으로는 세금 납세의무자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에요. "취득세를 매도인이 낸다"는 특약을 넣더라도, 법률상 납세의무는 여전히 취득자(매수인)에게 있어요.
제5조 계약 해제 — 계약금이 해약금이 되는 구조
제5조는 중도금 지급 전까지 가능한 위약 없는 해제를 규정해요. 민법 제565조의 내용을 계약서에 그대로 담은 거예요.
- 매수인이 해제하고 싶다면 → 이미 낸 계약금을 포기하고 해제할 수 있어요
- 매도인이 해제하고 싶다면 → 계약금의 두 배를 매수인에게 돌려주고 해제할 수 있어요
단, 이 조항이 작동하는 건 중도금을 지급하기 전까지예요. 중도금이 지급되면 계약은 이행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봐서, 단순 해약금 해제는 더 이상 인정되지 않고 이후에는 제6조의 채무불이행 문제로 넘어가요.
제6조 채무불이행 — 손해배상 예정액의 의미
제5조가 "서로 잘 헤어지자"의 조항이라면, 제6조는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어겼을 때의 구제수단이에요.
계약을 어긴 상대방에게 서면(내용증명 등)으로 이행을 최고하고, 그래도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어요. 실무에서는 10일 이상의 이행기간을 부여한 경우 대부분 적법한 최고로 인정됐어요.
여기서 중요한 게 "손해배상의 기준을 계약금으로 한다"는 부분이에요. 민법 제398조에 따라 배상액을 미리 정해두면 실제 손해가 그보다 크더라도 예정액 이상은 청구하기 어려워요. 손해 입증이 어려운 계약 분쟁 특성상, 예정액을 정해두는 것 자체가 실무상 많이 쓰이는 이유예요.
📌 실무 예시
매수인이 중도금까지 낸 뒤 잔금을 거부해 매도인이 계약을 해제한 경우, 매도인은 받았던 계약금+중도금을 원상회복으로 돌려줘야 하지만, 손해배상 예정액(계약금)과 상계하여 실질적으로 중도금만 반환하는 방식으로 정리돼요.
제7·8·9조 — 중개보수와 확인설명서
나머지 세 조항은 공인중개사와 관련된 내용이에요. 핵심만 짚어드릴게요.
- 제7조 중개보수 — 계약이 파기되더라도 공인중개사 귀책사유가 없다면 중개보수를 지급해야 해요. 공인중개사 잘못이 있을 때만 예외로 인정돼요
- 제8조 중개보수 외 — 중개보수는 부동산 가액에 비례한 법정 상한액이 있어요. 중개 외 별도 업무를 맡겼다면 그 보수는 합의로 추가 청구될 수 있어요
- 제9조 확인설명서 교부 — 공인중개사는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와 업무보증관계증서(공제증서 등) 사본을 계약과 동시에 교부해야 해요. 전자계약의 경우 공인전자서명 방식으로 교부한 것으로 갈음해요
자주 쓰이는 특약사항 3가지
특약사항은 기본 9개 조항 외에 당사자가 별도로 합의한 내용을 자유롭게 추가하는 공간이에요. 실제로는 이 특약이 거래 조건의 세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서, 어떤 내용들이 주로 쓰이는지 알아두는 게 도움이 돼요.
① 하자담보책임 관련 특약
민법 제580조에 이미 하자담보책임이 규정돼 있어요. 아파트 입주 후 발견한 하자라도 입주 전부터 있었다면 매도인에게 손해배상이나 계약 해제를 청구할 수 있어요. 단, 매수인이 하자를 알았거나 과실로 몰랐다면 청구가 어려워요. 특약에서는 주로 하자 발견 기한, 수선 방법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해두는 방식으로 활용돼요.
② As-is 조항
매수인이 내부 상태를 확인했고 그 상태 그대로 인수하겠다는 특약이에요. 매도인 입장에서는 하자담보책임을 배제하는 효과가 있어요. 다만 매수인이 확인 자체가 불가능했던 숨은 하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손해배상이 가능하다는 판례가 있으니, As-is라고 해서 모든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③ 제한물권 추가 금지 특약
원칙적으로 매도인은 잔금일까지만 저당권을 말소하면 돼요. 그런데 계약 이후 잔금일 사이에 새 저당권이 여러 개 더 설정된다면? 매수인 입장에서는 "과연 잔금날까지 다 정리될 수 있을까?"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이 특약은 계약 시점부터 제한물권 추가를 금지하고, 위반 시 제6조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이나 계약 해제가 가능하도록 못을 박아두는 거예요.
이 외에도 특약에는 잔금 입금계좌 사전 지정, 세입자 명도 기한, 이사 전 수리 항목 등 다양한 합의 내용을 담을 수 있어요. 필요에 따라 중개사와 함께 꼼꼼히 협의해서 넣어두시는 게 좋아요.
자주 묻는 질문
Q. 전자계약서로 계약하면 실거래 신고를 따로 해야 하나요?
국토교통부 부동산거래 전자계약시스템을 이용하면 실거래 신고와 확정일자 부여가 자동으로 처리돼요. 별도로 관공서를 방문하거나 추가 신고를 할 필요가 없어서, 토허제 구역에서 중개사들이 전자계약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예요.
Q. 계약금을 낸 후 잔금 전에 계약을 해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도금 지급 전이라면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매도인은 계약금의 배액을 반환하는 방식으로 해약금 해제가 가능해요(제5조 / 민법 제565조). 다만 중도금이 지급된 이후에는 단순 해약금 해제가 인정되지 않고, 이행지체에 따른 손해배상 문제로 넘어가요.
Q. As-is 특약이 있으면 입주 후 발견한 하자는 전혀 보상받을 수 없나요?
As-is 조항이 있어도 매수인이 사전에 확인하기 불가능했던 숨은 하자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판례가 있어요. 예를 들어 벽 내부 결로나 배관 누수처럼 육안 확인이 어려운 부분은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여지가 남아 있어요.
Q. 계약서에 "취득세를 매도인이 부담한다"는 특약을 넣을 수 있나요?
당사자 간 합의로 취득세를 매도인이 부담하는 특약 자체는 넣을 수 있어요. 다만 지방세법상 납세의무는 취득자(매수인)에게 있으므로, 매도인이 약속을 어기더라도 세무당국에 대한 납세 책임은 여전히 매수인에게 있어요. 특약 위반 시에는 매도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어요.
Q. 제한물권 추가 금지 특약을 위반하면 바로 계약 해제가 가능한가요?
특약 위반만으로 즉시 해제가 인정되는 건 아니고, 민법 제6조에 따라 서면으로 이행을 최고한 뒤에도 시정이 없을 때 해제권이 발생해요. 분쟁에 대비해 최고 내용은 내용증명으로 발송하고 증거를 보관해두는 게 중요해요.
처음 계약서 앞에서 모르는 게 많아도 이상한 게 전혀 아니에요. 오늘 정리한 내용 중 딱 두 가지만 기억해두셔도 큰 틀은 잡혀요. 잔금과 서류는 동시이행, 중도금 전까지는 해약금 해제 가능이에요.
서명하기 전에 특약사항 칸도 한 번쯤 꼼꼼하게 읽어보시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