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하반기 한국 경제는 수출과 내수의 뚜렷한 온도 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수출 전선과 건설 투자가 여전히 안개 속에 갇혀 어려움을 겪는 반면, 내수 경제의 핵심인 '소비' 부문에서는 주목할 만한 회복 신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경제 동향 분석을 통해, 시장금리 하락세와 정부의 적극적인 소비부양책이 맞물리면서 소비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는 구체적인 9월 실물 지표와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소비자 심리 지수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1. 내수 회복의 '마중물', 정부 소비부양책
KDI가 지목한 소비 회복의 가장 큰 동력은 단연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투입, 즉 '민생회복 소비쿠폰'입니다.
정부는 침체된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소비 지원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 지원 시기 | 지원 대상 | 지원 내용 | 주요 목적 |
|---|---|---|---|
| 7월 | 전 국민 | 1인당 15만원 | 보편적 지원을 통한 즉각적 소비 진작 |
| 9~10월 | 소득 상위 10% 제외 (90%) | 1인당 10만원 | 소비 여력이 부족한 계층 집중 지원 |
이러한 직접적인 현금성 지원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즉각적으로 늘려, 특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밀집한 골목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여기에 시장금리의 완만한 하락세 또한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장기간 지속된 고금리 기조로 가계의 이자 부담이 극에 달했던 상황에서, 최근 시장금리가 일부 안정세를 찾으며 주택담보대출 이자 부담 등이 소폭 완화되었습니다. 이는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데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2. 숫자로 확인된 9월 내수 지표의 극적인 반등
정책적 지원과 심리 개선은 9월 주요 내수 통계에서 뚜렷한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 9월 서비스업 생산, 6.2% 증가
가장 주목할 지표는 서비스업 생산입니다. 9월 서비스업 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6.2% 증가하는 강력한 반등을 보였습니다.
이는 지난 8월 증가율이 1.0%에 그치며 사실상 정체 상태였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극적인 전환입니다. 세부적으로는 소비쿠폰 사용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도소매업 분야와 금융·보험업 분야가 서비스업 전반의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 소매판매액, 특히 '내구재'가 이끌다
소비 동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9월 소매판매액 역시 전년 동월 대비 2.2% 증가하며 회복세를 확인시켰습니다.
증가율 자체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내용입니다. 승용차 등 내구재 판매가 무려 22.1%라는 폭발적인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내구재는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높고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품목입니다.
이러한 내구재 소비의 급증 현상은, 그동안 고금리와 경기 불확실성으로 인해 구매를 미뤄왔던 '이연 수요(Pent-up demand)'가 정부의 소비쿠폰 지급 및 심리 개선과 맞물려 일시에 분출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3년 만의 최고치: 소비자심리지수(CSI) 109.8
이러한 9월의 실물 지표 개선은 결국 소비자의 '심리'가 강력하게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최근 발표된 소비자심리지수(CSI)는 109.8을 기록, 이는 최근 3년간 가장 높은 수준을 경신한 수치입니다.
소비자심리지수(CSI)란?
CSI는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향후 경기를 낙관적으로 보는 소비자가 비관적으로 보는 소비자보다 많다는 의미이며, 100 미만이면 그 반대를 의미합니다.
109.8이라는 수치는 단순히 기준선 100을 넘긴 것을 넘어, 소비자들이 향후 경제 상황과 본인의 재정 상태에 대해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소비자들이 '앞으로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시작하면, 실제 소비 지출, 특히 자동차나 가전제품 같은 고가의 내구재 구매를 결정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9월 내구재 판매가 22.1%나 급증한 것은 이러한 심리 개선이 실제 구매 행동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결국 '정부 지원(실탄)'과 '심리 개선(기대)'이라는 두 개의 바퀴가 정확히 맞물려 9월 내수 지표의 인상적인 반등을 이끌어낸 셈입니다.
4. 남은 과제: 소비 회복의 '지속 가능성'
9월의 긍정적인 지표에도 불구하고, KDI를 비롯한 대부분의 경제 전문 기관은 현 상황을 '완만한 회복'이라고 신중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가장 큰 우려인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담겨 있습니다.
- 정책 효과의 소멸: 7월과 9~10월에 집중된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정책 효과가 사라지는 4분기 말, 그리고 2026년 초에도 이러한 소비 증가세가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재정 투입에 의한 '반짝' 효과인지, 민간의 자생력이 회복된 것인지 판단하기에는 이릅니다.
- 경제의 불균형: 이번 지표는 '내수'에 한정된 회복입니다. 여전히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인 수출과 건설 투자는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습니다. 소비가 아무리 살아난다 하더라도, 수출과 투자가 동시에 회복되지 못하면 경제 성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9월의 지표는 내수 경기가 최악의 국면은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청신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경제 전반의 '완연한 봄'을 의미하는지는, 정부 지원 효과가 사라진 이후의 고용 시장 개선과 가계의 실질 소득 증가 여부를 확인하며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