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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화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 우리가 정말 논해야 할 건 이것이다

by steady info runner 2025.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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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는 위서냐 사료냐, 그 논쟁은 사실 오래전에 지쳐버렸다.
진짜 쟁점은 단순히 사실 여부가 아니다. 우리가 ‘고대’를 대하는 태도, 즉 과거를 이해하는 방식의 문제다.


📌 목차

  1. 지금, 왜 고대사를 다시 말해야 하는가
  2. 유사역사학과 ‘군자국’ 신화의 함정
  3. ‘환단고기’ 논쟁이 멈추지 않는 이유
  4. 신화는 거짓이 아니라 질문이다
  5. 학문은 시민의 것이다
  6. 맺음말 – 고대사를 다시 읽는 용기

1. 지금, 왜 고대사를 다시 말해야 하는가

고대사 논쟁은 한국 사회의 오래된 밑바닥 정서를 드러낸다. “우리의 뿌리가 강대했다”는 이야기에 열광하는 쪽도, “그건 모두 허구다”라며 비웃는 쪽도 사실 다르지 않다. 둘 다 ‘역사를 증명’하려 하고, ‘현재의 자존감’을 거기서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영토의 크기’가 아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삶, 사유, 신앙, 그리고 문명의 감각이다. 이걸 논하지 않고 강역만 키운다면, 역사는 민족주의 선전물로 전락한다.


2. 유사역사학과 ‘군자국’ 신화의 함정

최근 일부 매체에서 다시 등장한 ‘군자국=조선’ 주장은 대표적인 유사역사학 서사다. 그 근거로 제시되는 산해경은 본래 허구와 전승이 뒤섞인 고대 지리지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건, 산해경에는 조선이 별도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군자국=조선”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의 뿌리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들이 세운 기자동래설에서 비롯됐다. 그들은 “우리 조선은 오랑캐가 아니라 군자의 나라”임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 결론을 정해두고 모든 논리를 그에 맞춘 것은, 오늘날 ‘유사역사학’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런 서사가 애국심을 파는 방식으로 쉽게 소비된다는 점이다. 신화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로 쓰이는 순간, 학문은 멈춘다.


3. ‘환단고기’ 논쟁이 멈추지 않는 이유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위서냐 정사냐’가 아니다. 우리가 이 책을 어떤 질문 방식으로 읽을 것인가에 있다.

주류 역사학계는 “20세기 초에 편찬된 책이니 위서다”라 주장한다. 하지만 ‘편찬 시기=내용의 기원’이라는 등식엔 문제가 있다. 성서, 베다, 중국 고대사 기록도 모두 후대의 편집이다. 문헌의 존재 시점이 곧 사상의 시점은 아니다.

중국 사서에 없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중국 사서는 본래 중원 중심의 정치사였으며, 주변 문명은 의도적으로 삭제되거나 왜곡됐다. 그 기록의 공백을 단순히 ‘존재 부정’의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4. 신화는 거짓이 아니라 질문이다

고대 문명에서 신화는 허구가 아니라 ‘세계를 설명하는 철학적 언어’였다. 이집트의 왕명이 신의 계시로 기록되고, 인도의 베다가 구전으로 전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시기 인간은 신화로 세계를 이해했다.

그렇다면 환단고기의 천손, 제천, 삼신사상도 단순한 신비주의가 아니라 인간과 우주, 사회의 조화를 묻는 고대적 사유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이건 곧 ‘문명 이해의 방식’이다.


5. 학문은 시민의 것이다

한국의 고대사 논쟁이 ‘감정싸움’이 되는 이유는 학문을 공공재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는 몇몇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질문할 수 있는 학문이다. 다만 그 질문은 근거와 검증 위에 서야 한다.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토론해야 한다. 그 때에야 ‘환빠’ 논쟁 같은 감정적 프레임은 사라진다. 학문은 닫힌 교단이 아니라 열린 광장 위에서 자란다.


6. 맺음말 – 고대사를 다시 읽는 용기

환단고기는 폐기해야 할 위서도, 숭배해야 할 경전도 아니다. 그것은 질문을 던지는 텍스트이며, 동아시아 문명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불편한 거울이다.

우리가 진짜 물어야 할 건, “고대 문명을 근대의 잣대로 재단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 질문을 회피하지 않을 때, 환단고기는 비로소 신화이자 역사이며, 한국사이자 세계사의 일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