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어깨가 되어줄 테니, 나를 밟고 올라가라."
우리는 보통 '언더독(약자)'의 반란에 열광합니다. 처절한 노력 끝에 역전하는 스토리, 가진 것 없는 자가 세상을 뒤집는 서사에 환호합니다. 하지만 <흑백요리사2>는 달랐습니다. 대중은 간절한 흑수저보다 여유로운 백수저(명장)들의 태도에 더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경쟁자가 아닌 스승이 되기를 자처하는 그들의 모습.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시대에 그토록 갈망하던 '진짜 어른의 품격' 아닐까요?
목차
욕심이 소음이 되는 순간: 간절함의 역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성공 공식은 뚜렷합니다. 사연 있는 참가자의 눈물, 독기, 그리고 처절한 노력입니다. 시청자는 그 간절함에 이입합니다. "저 사람은 정말 절실하구나" 하고 응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대중의 눈높이가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눈물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흘리는 눈물이 진짜 고통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편집된 드라마의 일부인지 구분하려 합니다.
"그 간절함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중은 이제 영리합니다. 간절함 뒤에 숨겨진 '자기 홍보', '브랜딩', '유명세에 대한 욕망'을 기가 막히게 감지합니다. SNS 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진심과 연출의 경계를 너무 많이 봐왔습니다.
욕망은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과하게 표출될 때 보는 사람은 피로감을 느낍니다. "나를 좀 봐주세요",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라고 외치는 아우성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침묵하는 실력자에게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이것은 간절함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는 '방향성'입니다. 내 성공만을 위한 간절함은 이기적으로 보입니다. 반면,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는 간절함, 함께하는 사람들과 성장하고 싶다는 간절함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같은 에너지라도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움과 추함이 갈립니다.

박효남, 후덕죽이 보여준 '달관'의 미학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백수저 셰프들(박효남, 후덕죽, 선재 스님 등)이 등장했을 때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정점에 오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달관(達觀)'의 태도였습니다.
달관은 체념과 다릅니다. 체념은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포기의 언어입니다. 하지만 달관은 "이미 충분히 해봤고, 결과가 어떻든 괜찮다"는 평온함입니다.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는 사람만이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특히 박효남 명장의 한 마디는 경쟁이라는 프레임을 완전히 부수어 버렸습니다.
"저는 흑수저 셰프들이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넘어서 더 훌륭한 요리사가 나오길 바랍니다."
이것은 경쟁자의 언어가 아닙니다. 후배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는 멘토의 언어입니다. 내 밥그릇을 지키려는 욕심 대신, 업계 전체의 발전을 생각하는 마음. 대중은 이 지점에서 '품격'을 느꼈습니다.
후덕죽 셰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술을 아낌없이 나눴습니다. 경쟁자에게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은 전략적으로 손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습니다.
이런 태도는 자신감에서 나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줘도 나는 여전히 가치 있다"는 확신입니다. 불안한 사람은 자신의 것을 나누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만큼 잘하게 되면 내 가치가 떨어질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짜 실력자는 압니다. 지식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것을요.
사심 없는 리더십: 아리스토텔레스의 에토스
설득의 심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 요소를 말했습니다. 논리(로고스), 감정(파토스), 그리고 인격(에토스)입니다. 그중 가장 강력한 설득력은 바로 화자의 '인격'에서 나옵니다.
논리가 아무리 완벽해도, 감정이 아무리 풍부해도,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으면 설득은 실패합니다. 반대로 신뢰받는 사람의 말은 논리가 다소 부족해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백수저들의 리더십은 전형적인 '에토스'의 힘을 보여줍니다.
에토스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 사심 없음(Disinterestedness):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의 가치를 우선함. 개인적 이득을 챙기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신뢰합니다.
- 신뢰(Trust):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의 궤적. 한두 번의 선행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온 일관성이 에토스를 만듭니다.
- 전문성(Expertise): 해당 분야에서 인정받은 실력. 하지만 실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실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화려한 기술이나 언변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저 사람은 나를 이용하려 하지 않는다"는 안정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백수저들에게서 발견한 리더십의 본질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리더십은 점점 희귀해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성과로 측정되고, 결과로 평가받는 시대입니다. 당장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여유를 가지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진짜 영향력 있는 리더는 항상 여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경쟁 사회가 놓친 것: 협력의 힘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쟁합니다. 유치원 때부터 대학 입시까지, 취업에서 승진까지, 모든 것이 경쟁 구도입니다. "남보다 잘해야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받습니다.
하지만 <흑백요리사 시즌2>는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진짜 성장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에서 온다고요. 백수저들은 흑수저들을 경쟁자로 보지 않았습니다. 함께 요리계의 수준을 끌어올릴 동료로 봤습니다.
생물학적으로도 협력은 생존에 유리합니다. 인간이 지구 최강의 종이 된 이유는 개인의 우수함 때문이 아닙니다. 협력할 수 있는 능력 덕분입니다. 혼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것들을 함께 만들어냈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기적으로는 경쟁자를 제치는 것이 승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협력자들을 많이 만든 사람입니다. 당신이 어려울 때 손 내밀어줄 사람, 당신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해줄 사람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진짜 경쟁력입니다.
백수저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명성이 흑수저들을 억누르는 데 쓰일 수도 있지만, 그들을 끌어올리는 데 쓸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후자를 선택했을 때, 자신도 더 큰 유산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거인의 어깨를 빌려야 하는 진짜 이유
"거인의 어깨 위에 서라"는 말은 유명합니다. 아이작 뉴턴이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12세기 철학자 샤르트르의 베르나르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앉은 난쟁이와 같다. 그래서 거인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자신의 어깨를 기꺼이 내어주는 거인은 드뭅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어깨를 밟고 올라오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질투합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해서 올라왔는데, 쉽게 올라오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결국 자기 발목을 잡습니다. 후배가 성장하지 못하면 업계 전체가 정체됩니다. 그리고 그 정체된 업계 안에서 당신의 가치도 함께 떨어집니다. 반대로 후배들이 잘 성장하면, 당신은 "훌륭한 제자를 키운 스승"으로 기억됩니다.
진짜 대가는 후배가 자신을 밟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그것이 자신의 추락이 아니라, 자신의 유산이 확장되는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위대한 스승들은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를 배출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을 길렀고,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길렀습니다. 각 세대는 이전 세대를 뛰어넘었습니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을 질투했다면? 서양 철학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누군가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이 사람이 나를 넘어서길 바라는가, 아니면 나보다 조금 못하길 바라는가?" 솔직한 답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당신이 어떤 리더인지를 결정합니다.
당신의 그릇은 얼마나 큰가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은 그릇이 크다"라고 말합니다. 그릇이 크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비난도 담을 수 있고, 칭찬도 담을 수 있습니다. 성공도 담을 수 있고, 실패도 담을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담을 수 있느냐입니다. 내 경쟁자가 잘되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는가? 내 후배가 나보다 더 빨리 성공하는 것을 보고 질투가 아닌 기쁨을 느낄 수 있는가?
그릇이 작은 사람은 자기 것만 챙깁니다. 당장 내 앞에 있는 기회, 내 이름이 오를 자리, 내가 받을 보상. 이런 것들로 그릇이 가득 차면 다른 건 들어올 공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릇이 큰 사람은 다릅니다. 자기 것을 내려놓을 줄 압니다. 자리를 양보할 줄 알고, 기회를 나눌 줄 압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내려놓을수록 더 많은 것이 돌아옵니다. 신뢰, 존경, 영향력 같은 것들이요.
우리의 일상과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빛나려고 발버둥 치기보다, 누군가의 어깨가 되어줄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당신을 '리더'라고 부를 것입니다.
<흑백요리사>는 단순한 요리 대결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 수업이었습니다. 젊을 때는 경쟁해야 합니다. 실력을 쌓고, 인정받고,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나를 증명하려 하지 않고, 내가 만든 환경 자체가 증명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어른이 되는 길입니다.
💡 Upgrade Your Life
실력은 당신을 높은 곳으로 데려다주지만, 그 자리를 지키게 하는 것은 '태도'입니다. 지금 당신은 누군가와 경쟁하고 있나요, 아니면 누군가의 어깨가 되어주고 있나요?
사심 없는 마음이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당신이 내어준 어깨 위에서 누군가 더 높이 올라갈 때, 당신의 유산은 그 사람을 통해 계속됩니다.
오늘부터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올라가는 사람인가, 올려주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당신이 어떤 리더가 될지를 결정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