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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지식

인류의 기원, 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 에티오피아

by steady info runner 2025.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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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의 역사는 인류의 기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프리카 '인류의 요람'으로 불리는 이곳 아와시 계곡에서는 약 320만 년 전의 인류 화석 '루시(Lucy)'(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에티오피아가 초기 인류 진화의 핵심 무대였음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멜카 쿤투레(Melka Kunture)와 같은 고고학 유적지에서는 170만 년 이상 된 올도완(Oldowan) 및 아슐리안(Acheulean) 시대의 석기 도구들이 대거 출토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며 복잡한 사회 활동을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기원전 1250년경 북부 에티오피아의 마이 아드라샤(Mai Adrasha) 유적지는 악숨 왕국이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발달된 금속 가공 기술과 복잡한 사회 구조가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곳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중 하나로 추정되며, 아라비아반도와의 장거리 무역 흔적도 발견됩니다.

또한, 에티오피아의 고원지대는 농업 발달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현재 에티오피아의 주식 곡물인 '테프(Teff)'가 바로 이곳에서 처음 길들여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선사 시대의 기반은 기원전 1천 년대, 조직화된 고대 왕국이 탄생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고대 왕국의 번영: 푼트, D'mt, 그리고 악숨

선사 시대를 지나 에티오피아 지역에는 강력한 고대 왕국들이 차례로 등장하며 문명의 꽃을 피웠습니다.

푼트의 땅 (기원전 약 3000–1000년)

고대 이집트의 기록에는 '신들의 땅' 또는 '푼트의 땅'이라 불리는 교역 상대가 등장합니다. 이집트인들은 푼트로부터 몰약, 상아, 금, 향신료 등 귀중품을 수입했습니다. 푼트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오늘날의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일부를 포함하는 아프리카 뿔 지역으로 비정됩니다. 특히 하트셉수트 여왕(기원전 15세기)의 원정 기록은 푼트와의 교역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D'mt 왕국 (기원전 약 980–400년)

기원전 1천 년대 초, 북부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지역에서 D'mt(다마트) 왕국이 등장했습니다. 수도는 예하(Yeha)였으며, 이곳에는 거대한 사바(Sabaean) 스타일의 사원 유적이 남아있습니다. 이는 당시 남아라비아(현대 예멘) 지역과의 활발한 교류와 영향을 보여줍니다. D'mt는 식민지가 아닌 독자적인 세력이었으며, 이후 등장하는 악숨 왕국의 중요한 기반이 된 것으로 평가됩니다.

악숨 왕국 (기원전 약 100년–서기 940년)

에티오피아 고대사의 정점은 악숨(Aksum) 왕국입니다. 티그라이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악숨은 서기 1세기경 홍해 무역의 패권을 장악한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 무역 제국: 악숨은 로마, 인도, 아프리카 내륙을 연결하는 무역로의 중심지였습니다. 상아, 금, 노예 등을 수출하고 비단, 향신료, 유리 등을 수입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3세기 엔두비스(Endubis) 왕 때부터는 독자적인 금화와 은화를 주조할 정도로 경제력이 막강했습니다.
  • 기독교 수용: 악숨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4세기 에자나(Ezana) 왕의 기독교 개종입니다. 성 프루멘티우스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악숨은 로마 제국과 거의 동시대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최초의 국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 영토 확장과 쇠퇴: 6세기 칼렙(Kaleb) 왕 시절에는 홍해를 건너 예멘 지역을 침공하여 기독교도를 보호하는 등 강력한 군사력을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7세기 이후 이슬람 세력의 부상으로 홍해 무역로가 막히고,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 등이 겹치면서 악숨은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악숨은 비록 멸망했지만, 그들이 남긴 게에즈(Ge'ez) 문자와 거대한 스텔라(오벨리스크), 그리고 에티오피아 정교회라는 강력한 종교적 유산은 현재까지 에티오피아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주요 왕조 및 시대 구분

에티오피아의 긴 역사는 여러 주요 시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각 시대는 고유한 문화적, 정치적 특징을 가집니다.

시대 구분 주요 시기 수도 (중심지) 핵심 특징
D'mt 왕국 기원전 약 980–400년 예하 (Yeha) 남아라비아 영향, 악숨의 전신
악숨 왕국 기원전 약 100년–서기 940년 악숨 (Aksum) 홍해 무역, 기독교 국교화 (에자나 왕)
자그웨 왕조 약 960–1270년 로하 (라리벨라) 라리벨라 암굴 교회, 아가우 족
솔로몬 왕조 1270–1974년 (유동적) -> 곤다르 -> 아디스아바바 '케브라 나가스트' 정통성, 아드와 전투 승리
제메네 메사핀트 1769–1855년 (분권화) '왕자들의 시대', 중앙 권력 공백
데르그 정권 1974–1991년 아디스아바바 군부 공산 정권, 적색 공포, 기근
연방 공화국 1991년–현재 아디스아바바 민족 연방주의, 경제 성장과 내전

중세 에티오피아: 자그웨와 솔로몬 왕조

악숨의 쇠퇴 이후, 에티오피아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는 남쪽의 고원지대인 라스타(Lasta)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자그웨 왕조 (약 960–1270년)

악숨 멸망 후, 아가우(Agaw) 족이 자그웨(Zagwe) 왕조를 세웠습니다. 수도는 로하(Roha)였으나, 이 도시는 훗날 왕조의 가장 위대한 왕인 게브레 메스켈 라리벨라(Gebre Mesqel Lalibela)의 이름을 따 '라리벨라'로 불리게 됩니다.

라리벨라 왕은 예루살렘 순례가 이슬람 세력에 의해 막히자, 에티오피아에 '새 예루살렘'을 건설하겠다는 염원으로 11개의 거대한 암석 절제 교회를 건설했습니다. 통 암석을 깎아 만든 이 교회들은 중세 건축 기술의 경이로움 그 자체이며,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자그웨 왕조는 이슬람 세계와도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예루살렘과 카이로의 기독교도들을 보호하기도 했습니다.

초기 솔로몬 왕조 (1270–16세기)

1270년, 스스로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후손임을 주장한 예쿠노 암락(Yekuno Amlak)이 자그웨 왕조를 무너뜨리고 솔로몬 왕조를 개창했습니다. 이 왕조는 1974년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가 폐위될 때까지 에티오피아를 통치하게 됩니다.

  • 케브라 나가스트 (Kebra Nagast): 솔로몬 왕조의 정통성은 '왕들의 영광'이라는 뜻의 서사시 케브라 나가스트를 통해 확립되었습니다. 이 책은 시바 여왕이 솔로몬 왕을 만나 아들 메넬리크 1세를 낳았으며, 메넬리크 1세가 언약궤를 에티오피아로 가져와 왕조를 열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영토 확장과 종교 개혁: 암다 세욘 1세(14세기), 자라 야콥(15세기) 같은 강력한 황제들은 영토를 확장하고 이슬람 술탄국들을 제압했습니다. 특히 자라 야콥 황제는 권력을 중앙화하고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교리를 확립하는 등 내부 결속을 다졌습니다.
  • 에티오피아-아달 전쟁 (1529–1543): 16세기 초, 이슬람 아달 술탄국의 이맘 아흐마드 그라간(Ahmad Gragn)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에티오피아는 멸망 직전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국토의 4분의 3이 파괴되었으나, 겔라우데워스 황제가 포르투갈의 소규모 원조군과 연합하여 1543년 와이나 다가(Wayna Daga) 전투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왕국을 지켜냈습니다.

근대 초기 에티오피아: 곤다르 시대와 혼란기

전쟁의 상처를 극복한 에티오피아는 새로운 수도에서 문화적 부흥기를 맞이했으나, 이내 극심한 분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곤다르 시대 (1632–1769)

1636년, 파실리데스(Fasilides) 황제는 곤다르(Gondar)에 새로운 수도를 정했습니다. 그는 전쟁을 초래했던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전통을 다시 확립했습니다. 곤다르 시대에는 '파실 게비(Fasil Ghebbi)'라는 거대한 왕궁 요새가 건설되었으며, 독특한 건축물과 교회의 프레스코화 등 예술과 문화가 크게 발전했습니다. 이 시기 에티오피아 철학자 제라 야콥(Zera Yacob)은 하타타(Hatata)라는 저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제메네 메사핀트 (왕자들의 시대, 1769–1855)

곤다르 시대 후반, 황제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강력한 지방 영주(라스, Ras)들이 실권을 장악하는 극심한 혼란기가 도래했습니다. 1769년 라스 미카엘 세훌의 쿠데타를 기점으로 약 100년간 이어진 이 시기를 '제메네 메사핀트(Zemene Mesafint)', 즉 '왕자들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 황제는 이름뿐인 꼭두각시로 전락했고, 티그라이, 셰와 등 각 지역의 영주들이 서로 싸우며 권력을 다퉜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사실상 분열 상태에 빠졌으며,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되었습니다.


현대 에티오피아: 통일, 식민지 저항, 그리고 격동

19세기 중반, 에티오피아는 분열을 끝내고 강력한 통일 국가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내부의 혁명과 외부의 침략으로 얼룩졌습니다.

통일 제국의 수립 (1855–1913)

  • 테워드로스 2세 (재위 1855–1868): '왕자들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에티오피아를 재통일한 인물입니다. 그는 군대와 행정의 현대화를 시도했으나, 영국인 인질 문제로 1868년 영국의 침공(마그달라 원정)을 받았고, 패배 직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 요하네스 4세 (재위 1872–1889): 이집트, 이탈리아, 그리고 수단의 마디스트 세력 등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웠습니다. 1889년 메템마 전투에서 마디스트군을 상대로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 메넬릭 2세 (재위 1889–1913): 현대 에티오피아의 기틀을 닦은 가장 위대한 황제로 꼽힙니다. 그는 수도를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로 옮기고, 철도를 도입하는 등 근대화를 추진했습니다.
  • 아드와 전투 (1896): 메넬릭 2세의 가장 빛나는 업적은 아드와(Adwa) 전투에서 이탈리아 침략군을 결정적으로 격파한 것입니다. 당시 '아프리카 분할' 광풍 속에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국가가 유럽 식민 세력을 상대로 거둔 유일하고도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이 승리로 에티오피아는 독립을 지켜냈으며, 전 세계 흑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일레 셀라시에와 이탈리아 점령 (1916–1974)

메넬릭 2세의 뒤를 이은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 황제는 에티오피아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고자 노력했습니다. 노예제를 공식 폐지(1942년)하고 국제 연맹에 가입(1923년)하는 등 국가 시스템을 현대화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1935년,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다시 침공했습니다. 이탈리아는 독가스까지 사용하며 잔혹하게 전쟁을 벌였고, 1936년 에티오피아를 점령했습니다. 하일레 셀라시에는 국제 연맹에서 이탈리아의 침략을 규탄하는 연설을 했으나, 열강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5년간의 점령기 끝에 1941년, 영국군과 에티오피아 저항군의 활약으로 해방되었습니다.

전후 복귀한 황제는 1952년 에리트레아를 연방으로 편입하고 1962년에는 강제 병합했으나, 이는 30년에 걸친 에리트레아 독립 전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데르그 공산 정권 (1974–1991)

1974년, 오랜 통치에 대한 불만과 심각한 기근이 겹치면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폐위되고 수천 년간 이어진 솔로몬 왕조는 막을 내렸습니다.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Mengistu Haile Mariam)이 이끄는 '데르그(Derg)'라는 군사 평의회는 마르크스주의를 내세운 공산 정권을 수립했습니다.

  • 적색 공포 (Red Terror): 1977-1978년, 데르그 정권은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적색 공포'라 불리는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대기근과 내전: 1983-1985년 에티오피아는 다시 한번 끔찍한 대기근을 겪으며 100만 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또한 소말리아와의 오가덴 전쟁(1977-1978), 에리트레아 및 티그라이 독립 세력과의 내전으로 국력은 완전히 피폐해졌습니다.

현대: 연방 공화국과 새로운 도전 (1991–현재)

1991년, 티그라이 인민해방전선(TPLF)이 주도하는 반군 연합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이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하면서 17년간의 데르그 공산 정권은 무너졌습니다.

  • 민족 연방주의 (1995–2018): 멜레스 제나위(Meles Zenawi) 총리가 이끈 EPRDF는 1995년 새로운 헌법을 통해 민족 기반의 연방 공화국 체제를 도입했습니다. 90여 개 민족에게 자치권을 부여하는 이 시스템은 한편으로는 안정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 간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에티오피아는 연평균 10%에 달하는 높은 경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 아비 아흐메드 총리의 개혁 (2018–현재): 2018년, 오로모족 출신의 아비 아흐메드(Abiy Ahmed)가 총리로 취임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치범을 석방하고, 언론 검열을 중단했으며, 숙적이었던 에리트레아와 20년 만에 평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201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 티그라이 전쟁 (2020–2022): 그러나 개혁 과정에서 기존 기득권 세력이었던 TPLF와의 갈등이 격화되었습니다. 2020년 11월, 연방 정부와 티그라이 지역 정부 간의 갈등은 전면적인 티그라이 전쟁으로 비화되었습니다. 2년간의 참혹한 내전은 에리트레아군까지 개입하며 수십만 명의 사망자와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 현재의 과제: 2022년 11월 평화 협정으로 전쟁은 일단락되었으나, 에티오피아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암하라주, 오로미아주 등지에서 민족 간 폭력이 계속되고 있으며,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2025년 현재, 에티오피아는 '그랜드 에티오피안 르네상스 댐(GERD)' 완공을 통한 경제 발전과 민족 갈등 봉합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과제를 안고 그 기나긴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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